주여 우리를 매 맞아 죽지 않게 하소서
이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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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29 09:16
주여 우리를 매 맞아 죽지 않게 하소서
주여 우리를 굶어 죽지 않게 하소서
주여 우리 어미 아비 자식이 한데 모여 살게 하소서
주여 겁 많은 우리를 주님의 나라로 부르지 마시고
우리들의 마음에 주님의 나라를 세우소서
주여 주를 배반한 자들을 모두 부르시고 거두시어 당신의 품에 안으소서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소설가 김훈이 강변북로를 타고 양화진의 절두산 성지를 지나칠 때마다 마음의 부담이 되어 썼다는 소설 "흑산"에 소개된 천주신자들의 기도문이다. 아마도 천민 출신의 천주신자들이 올린 기도문이 아닐까 한다. 매맞아 죽지 않게 해달라는 구절이 마음 아프고, 겁 많은 우리들을 당장 주님의 나라로 부르지 말 것을 요청하는 구절이 가슴 아리다.
목숨말고는 지킬 게 없었던 천민들에 비해 양반 엘리트 출신의 천주신자들의 피흘림은 놀랍다. 왕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저버리고, 격있는 조상 숭배를 깨뜨리며, 양반계급이 누릴 수 있는 기득권을 버리고, 그들의 존재 핵심에 있는 유교 철학을 버려가면서까지 피흘리고 부서지며 목매달리고 머리 잘리면서 주님께 나아갔던 것이 고작 140년 전 양화 나루터에서 벌어진 일이다.
나는 너무 쉽게 신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믿지 않는 소설가 김훈이 양화진 순교자들의 목잘림의 처절함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