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짐의 영광
부활의 환희와 영광은 말할 것 없이 기쁩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십자가에서 망가진 주님의 모습 속에 진짜 하나님의 인류를 향한 깊은 사랑이 있음을 고난주일에 다시생각합니다.
아래의 글은 내수동 교회 박지웅 목사님의 올해 2월3일자 국민일보 칼럼입니다.
읽으면서 감동이 되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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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망가지는 것이다.
품위를 지키는 것을 생명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망가지는 것을 죽기보다 두려워한다.
청소년이 된 큰딸에게 ‘수영장에 들어가는 것이 왜 싫냐’고 물으니, 머리스타일이 망가지는 것이 너무 싫단다.
레크리에이션 시간에 목회자가 망가지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대리만족을 얻는다.
왜? 망가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망가지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 망가지지 않으려고 조마조마하며 세상을 살
던 나의 긴장감이 살짝 풀어지며 미묘한 대리만족을 얻는 것이다.
사실 망가지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망가짐, 바로 거기에 영광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싶다.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혼자서 분식집을 하며 딸을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다.
딸이 미술에 소질이 있어서 분식집을 하며 번 돈으로 딸을 미술학원에 보내며 열심히 뒷바라지를 했다.
어느 날, 딸이 돌아올 시간에 갑자기 장대비가 내리는데 혹시 딸이 비를 맞을까 해서 우산을 들고 미술학원으로 달려갔다.
미술학원에 가까이 왔는데, ‘아차’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급한 마음에 달려왔는데 밀가루가 덕지덕지 붙은 앞치마를 두르고 그냥 뛰어 온 것이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가 혹시 친구들 앞에서 엄마를 보면 얼마나 부끄러울까?’ ‘그냥 돌아갈까, 아니야 그래도 비를 맞는 것보단 낫겠지!’ 이런 생각들이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데, 저 멀리 2층 학원에서 딸이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드는데 아이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역시 엄마 꼴이 말이 아니라서 창피했나보다!’ 엄마는 섭섭하고 속이 상해서 집에 와서도 한동안 말을 안 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 달 후, 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미술 발표회에서 딸이 특상을 받았으니 참가해 달라는 것이다.
딸의 그림을 보는 순간, 엄마의 호흡이 잠시 멎는 것 같았다.
그 그림 속에는 비를 맞으면서 서 있는 엄마의 모습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밑에 붙은 제목이 특별했다.
제목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날 엄마를 향해 달려오지 못한 것은 엄마의 그 모습을 화폭에 담기 위해서였다.
딸의 눈에는 망가진 엄마의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비쳐졌다.
왜일까? 딸을 사랑하는 엄마의 희생과 사랑이 그 망가진 모습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화려한 옷을 입은 말끔한 예수님의 모습을 자랑하지 않는다.
십자가에 달린, 처참하게 망가진 모습! 그 모습을 자랑한다.
그 모습을 대할 때, 우리의 가슴이 아프지만 그 망가진 모습 속에 우리의 자랑과 영광이 있기 때문이다.
망가진 모습 속에 영광이 있다.
우리가 장차 그분 앞에 설 때, 우리의 자랑과 영광이 무엇일까? 화려하고 말끔한 모습이 아닌, 우리의 망가진 모습이 아닐까? 그분을 위해서 기꺼이 망가지는 모습과 인생이 되면 어떨까? 망가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몸을 사리는 것, 이것이 항상 문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