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영접하는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최근에 인상적인 철학책을 읽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기독교 철학자로 분류할 수 있는 유대인 철학자 레비나스의 "타인의 얼굴"인데 그는 2차 세계대전 때 두 동생을 포함한 가족들이 히틀러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는 그렇게 참담한 현실 가운데 왜 그러한 비극이 발생했는지를 깊이깊이 고민하게 됩니다. 그의 결론은 서양 주체철학의 전체성이 타인의 존재를 제거하기까지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나를 둘러싼 세계를 인지하고 이해하며 나의 행복을 위해 나 아닌 것들을 나의 존재 영역으로 끌어 들이게 되는데, 내가 중심이므로 나 아닌 모든 것들은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수단으로서 기능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내 옆에 있는 아내도, 가족도, 이웃도, 친구도, 회사동료도 나의 기준과 이익에 부합하면 내 것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타인을 낯선 존재로 규정하며 그를 배척하고 제거할 수도 있다는 논리죠. 레비나스는 우리들에게 타인을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목적으로서 영접하기를 요구합니다. 특히, 약한 자의 얼굴로, 고아와 과부의 눈에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주린 자의 얼굴로, 상한 자의 얼굴로 다가서는 타자를 환대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으로 성경을 이해하며 그러한 타인 영접의 모델로 예수님을 제시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얘기가 길어졌습니다. 저는 직업상 교사로서 많은 중고생들을 접합니다. 가끔 힘에 부치는 아이들이 있고 귀여워해줄 수 없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저 꾹 참고 그들을 형식적으로 대할 때가 많은데 많은 반성을 하게 됩니다. 있는 그대로 그들의 모습을 받아들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들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으면 이경준 목사님 말씀처럼 외기라도 하겠습니다. 오늘 학교2013 드라마를 볼 예정입니다. 드라마 속 장나라가 맡은 선생님의 역할이 레비나스가 그리는, 지난 주 곽우신 목사님 설교 마지막 멘트처럼 타인을 영접하고 사랑하는, 그래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