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릴적 우울증 치료기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이다.<?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집 이사로 전학을 하게 되었다.
정들었던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정말 슬펐다.
특히 내 짝꿍 여자 아이와 헤어지는 것이 정말 슬펐다.
그 여자 아이는 부자 집 아이였고, 피아노를 꽤나 잘 쳤던 친구였다.
반에서 제일 인기 있는 여자아이였지만, 난 그 짝꿍이었던 것이다.
이삿짐 트럭에 앉아 집을 떠날 때 서글픔과 외로움이 밀려왔다.
새로 전학간 학교에서 적응은 쉽지 않았다.
친구들도 낯설고 선생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내 별명을 쿤타퀸테로 불렀다.
그 당시 유명한 ‘뿌리’라는 해외영화 흑인노예 주인공 이다.
어릴 적 부터 나는 피부색이 검어 늘 놀림을 당했다.
검둥이, 깜씨, 쿤타퀸테,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인종차별 받아 쫓겨온 아이 등등
피부색과 연관된 별명이 참 많았다.
자존심 강한 나는 그럴 때 마다 아이들과 싸우곤 하였다.
그런데 전학 온 학교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울적하고 외로운데 왕따가 된 기분이라 학교 가기가 싫었다.
하루는 학교 가기가 너무 싫어 다른 곳으로 샜다.
버드나무를 꺽어 버들피리를 만들어 불기도 하고
시냇가에 돌멩이 던지기를 하며 마음의 울적함을 달랬다.
학교 하교시간에 맞춰 집에 돌아가던 중 같은반 학생들을 만났다.
그 아이들은 반에서 주먹을 쓰며 얘들을 괴롭히는 문제아?들이었다.
상대하기가 싫어 발길을 돌리는데 거기서 대장되는 녀석이 나를 불렀다.
어이 깜씨! 이리와봐!!
나는 들은 척도 안하고 그냥 가던 길을 갔다.
어쭈!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멱살을 잡으며 내 가슴을 주먹으로 한대 쳤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3대까지만 참는다.
그 말에 어이없어하며 아이들이 웃으며 조롱한다.
어휴….무섭네 무서워….그러다 사람 치겠다…..
내 가슴 팍을 또 다시 때렸다.
나는 손에 들었던 가방을 땅에 떨어 뜨렸다.
가방 놓은면 어떻게 할건데…..이걸 그냥!!
또 다시 주먹으로 내 아구통을 때렸다.
그 주먹을 맞는 순간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나도 주먹을 날려 녀석의 아구통을 날렸다.
순간 녀석이 쓰러졌다.
나는 땅에 떨어진 가방을 들고 흑먼지를 털며 그냥 가던 길을 가려했다.
순간 쓰러졌던 녀석이 뒤에서 발로 내 허리를 걷어찼다.
나는 또 다시 이성을 잃고 주먹을 계속 휘둘렀다.
퍽!! 퍼벅!! 이윽고 녀석이 또 쓰러졌다.
같이 있던 녀석들이 모두 놀란 표정이다.
그런데 쓰러진 녀석이 일어나질 않는다.
나는 순간 당황하고 겁이났다.
그런데 어디서 요란하게 싸이렌 소리가 들렸다.
엥 엥! 엥 엥!
그 싸이렌 소리에 겁을 집어먹고 숨도 쉬지 않고 내뺐다.
경찰이 나를 잡으려 오면 어떻게 하지!!! 큰일 났다.
싸이렌 소리는 더 크게 들려왔다.
엥 엥! 엥 엥!
어찌나 빨리 달렸는지 금방 집에 도착해 대문을 걸어 잠궜다.
숨이 벅차 주저 앉아 숨을 내몰라 쉬고 있을 때 방송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민방위본부 민방위 본부” “모두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그 소리에 허탈감에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안도의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 날 학교 가기가 너무 무서웠다.
내가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떠들고 웅성대던 아이들이 조용해졌다.
어제 싸웠던 대장녀석은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어 있었고,
얼굴이 퍼렇게 벌집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생계란을 굴리며 나를 보자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다가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녀석을 보고
또 사고를 쳤니? 이번엔 누구랑 싸우다가 그 지경이 되었냐?
반에 한 아이가 대답했다.
저기 새로 전학 온 동수랑 싸웠대요.
나는 겁이 덜컹 나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선생님은 내게 다가오시며 머리를 쓰다 듬어 주었다.
잘했다!! 저 녀석은 좀 맞아야 돼…. 앞으로 잘 지내보자!!
그 날 이후로 울적했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새로운 친구들과 즐거운 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물론 헤어진 여자 짝꿍이 가끔은 생각이 났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