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밤 평안의 밤
거기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시1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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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쯤이었을 겁니다.
늦가을 맑은 어느날 오후 나는 새총을 만들 나무를 찾아 혼자 산을 올랐습니다.
산초나무는 잘 부러지지 않고 또 탄력이 좋기에 동네 아이들은 그 나무로 새총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나도 그 나무를 찾아 점점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양쪽으로 잘 벌어진 적당한 가지를 찾아 때론 가파르고 비탈진 산에서 정신없이 헤매었습니다.
그러다 문뜩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길도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산속의 밤은 더 빨리 오는 것 같았습니다.
“아! 큰일났다! 어떻게 내려가지?”
현실의 상황을 인지한 그때...
그 순간부터 초인의 힘으로 넘어지고 헤매면서 잘 보이지도 않는 좁은 산길을 헤치며 마을로 무조건 뛰었습니다.
빨리 뛰면 뛸수록 뒤에서 누가 목덜미를 붙잡는 것 같은 두려움과 공포가 점점 더 감당하기가 어려울 만큼 커져만 갔습니다.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도, 무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어둠속에 서 있는 나무도 모두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이 상황을 훨씬 더 힘들게 할때도 있지요.
산을 내려오는 길에는 묘지들도 많이 있고 또 왼쪽 골짜기에는 상여를 보관하는 곳(우리는 ‘곳집’이라 불렀습니다)도 있었습니다. 또 마을에서 전래되는 괴담도...
나는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공포는 엄청나게 증가했습니다.
온몸은 땀이 비 오듯이 흐르고 다리는 후들거리고....
어린 나이에 죽음보다도 더한 상상을 초월한 공포감... 그런걸 경험해 본적이 있나요?
넘어지거나 나무에 긁혀서 피가 나는 것은 문제도 되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패닉상태가 되어 더 이상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을 만큼 되었습니다.
나 이제 죽었다 싶었을 그때...
바로 그때 동편 산을 넘어 골짜기로 울려퍼지는 큰 소리가 있었습니다.
댕그렁~ 댕그렁~~~
쉬지 않고 너무도 크~게...
종소리였습니다.
그 소리가 밤하늘을 타고 산을 넘고 언덕을 넘어 내가 서 있는 골짜기를 향해 얼마나 크게 울려퍼지는지요?
내 옆에서 종을 치는 것 같았습니다.
바로 내가 다니던 시골 종부교회 종소리입니다.
수요일 예배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였습니다.
채 1분도 안되어 저 멀리 강 건너 약수라고 하는 동네 교회에서도 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교회 종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그 순간, 모든 두려움도, 모든 공포도 다 사라졌습니다.
마치 그 교회 종소리가 온 산을 다 품는 것 같았고, 하나님이 “내가 여기있다. 네 옆에 있다.
그리고 나는 항상 여기 있었다”라고 하시는 음성 같았기 때문입니다.
저 종소리가 이 깊은 산 속에도, 극심한 공포의 대상이었던 묘지가 있는 곳에도, 상여가 놓인 곳에도 산을 넘어 항상 들렸었다고 생각하니 이젠 무서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 무섭던 공포의 산길이 평안의 동산으로 바뀌었습니다.
캄캄한 산속이 대낮보다도 더 환하게 느껴졌습니다. 묘지의 잔디가 눕고싶은 시편 23편의 푸른 초장같았습니다.
아! 하나님은 저 종소리가 어디에서든지 들리는 것 처럼 이 모든 산에도 계시구나!
지금 생각하면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도망가다 루스라고도 하는 베델에서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창28:16)라고 한 고백을 나도 그때 한 것입니다.
그 종소리가 들린 후 이젠 어디도 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다시 산길을 돌아갔다 오라해도 두렵지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가슴을 펴고 주일학교에서 배운 찬송을 부르며 담대하고 너무 기쁘게 그 산을 내려왔습니다.
지금은 그 무섭던 산에 평창종합운동장이 들어섰고 바로 옆에 우리 어머니 묘가 있습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인지하든 못하든 간에 하나님은 항상 거기 계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