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삶의 딜레마(1)
박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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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6 20:19
그리스도인이 목표와 계획에 중독되면
우상숭배에 쉽게 빠지게 되는 현상!
목표와 계획이란 말이 기독교 문화 안에서 어떻케
사용되어지고 있는지 한번 관찰해 봤다.
- 일년에 성경을 1독하는 계획!
- 경건의 시간을 365일 빠짐없이 하는 계획!
- 하루에 전도를 3명이상 하는 계획!
위의 계획들을 통한 나의 목표는?
영적인 신비한 능력을 얻음?
더 많이 거룩해짐?
인기높은 예배 인도자가 됨?
과연 계획데로 하면 예측한 목표가 그대로 달성이 되는 것인지?
그리스도인의 삶이 의미있고 영향력이 있는
모양으로 나타나기 위해서 뭔가 목표와 계획이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상식적으로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원래 목표와 계획이란 단어가 사용되는 시스템은
돈을 버는 인위적 계산 시스템에서 본 의미가 있다.
예측된 결과가 실제 결과와 싱크로율 100%의 근접 동일성을
가지도록 하기위한 인간의 최선의 노력과 방법이
만들어낸 개념일 것이다.
목표와 계획이라는 말은 그것에 대한 책임과 행동을
제시하게 되고 정해진 결과를 얻어내고자하는
결과 도출용 개념인 것이다.
목표와 계획은 미래의 예측된 불확실한 결과에 대한
불안을 현시점에서 심리적으로 이겨보겠다는 의도에서
나타나게된 순수 인간적 의지의 개념인 것이다.
목표와 계획이란 말을 하나님 앞에서 사용한다고
가정을 한번 해보자!
- 목표 : 10년후에 나는 과학자가 되는것!
- 계획 : 지금부터 단계별로 전문지식을 공부해서 어떤 대학에 입학하는것!
- 기도제목 : 내가 원하는 그 대학에 꼭 입학하게 해주세요~
그런데 5년 후...
- 목표 : 5년후에 나는 의사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의사가 되는것이 더 가치있어 보인다!
- 계획 : 지금부터 단계별로 전문지식을 공부해서 어떤 의대에 입학하는것!
- 기도제목 : 내가 원하는 그 대학에 꼭 입학하게 해주세요~
그런데 4년 후...
- 목표 : 1년후에 나는 선교사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선교사가 되는것이 더 가치있기 때문이다.
- 계획 : 선교지를 알아보고 지역문화 공부를 1년동안 할것!
- 기도제목 : 모 선교지역으로 꼭 선교사로 나가게 되도록 해주세요~
우리가 한번 정한 목표와 계획이라는 것이
과연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변하지 않고 끝까지 그 모양을
유지할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의 상황들이 허락을 해주던가?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주변의 영향력속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삶의 방향과 동기력을 받아가고 있다.
10년전에는 그 생각이 최선의 목표였고 계획이였는데,
지금은 그 목표와 계획이 요구했던 방향이 전혀 맞지 않는
상황이 되어버려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 목표와 계획이란 명분때문에 좌절과 절망이란 것을
경험해야만 하게될지도 모른다.
무엇에 대한 좌절과 절망인가?
나의 목표와 계획이 만들어낸 좌절과 절망이 아니던가?
쉽게 말을 한다면...
나의 목표와 계획이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목표와 계획이 없는데 어떻케
부지런하게 살수 있단 말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지게
될지도 모른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일 일을 오늘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오늘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내일이 과연 올지 않올지 모르는것이 아니냐?
나의 목표와 계획이라는 것이 삶을 부지런하게
하는 명분이 된다고 하는 이유는 그 삶이 하나님이
아닌 순전히 자기의지로만 진행되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목표와 계획은 내일일을 나의 생각으로 자꾸 예측하게 만든다.
그래서 지금의 나의 행동이 그 목표와 계획에서 조금만 벗어나게 되면
오지도 않은 미래를 미리 부정해 버리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것이다.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온다고 할때 목표와 계획에 매여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어야 겠다는 생각을 할수가 없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도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은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온다고 해도 사과나무 심는일에 부지런함을
나타낼 수 있는것이다.
좀 심오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란 아주 단순하다.
막연한 미래를 위해서 살지않고
값지게 허락된 오늘을 귀히 여기고 사는 것!
오늘을 귀히 여기게 되는 이유는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기 때문이다.
곧, 죽음 이후에 대한 확신!
부활에 대한 확신!
바로 죽음에 대한 자유함이 있기 때문에...
진정한 근면과 진정한 성실 그리고 진정한 부지런함은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요셉이 목표와 계획이 있어서 애굽의 총리가 된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가 목표와 계획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부분의 원래 모양은
컨셉(의도)내지는 푯대 또는 변하지 않는 방향성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 푯대 : 목표가 아닌 방향을 제시해주는 개념
컨셉과 방향성을 자꾸 눈에 보여지는 목표와 계획으로
치환해서 확인하고자 하는 나의 불안한 심리가 문제인 것이다.
눈으로 보여지는 결과로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면,
예수님은 매일 매일 우리 눈앞에 직접 그모습을 보여주셔야만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기도할때 조심해야 할것이 있다면
자꾸 수치적이고 눈에 보여지는 물리적근거에
빠져들면 안된다. 그렇케 되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기도가 아닌 나의 생각과 나의 만족을 구하는
우상숭배로 나타나는 오류를 범하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좀 더 정직하게 하나님의 뜻에 질문을 드려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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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공동체에서 사용하는 방법중에 OAT라는 TOOL이 있다.
OAT는 단순히 목표와 계획을 훈련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컨셉을 깨닫게 하기위한 TOOL이다.
TOOL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것은 강제사항이 아니라는 것!
자기한태 유용한 방법이라고 생각되면 사용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도!
컨셉을 깨닫게 되면 OAT와 같은 TOOL은 개인의 신앙생활에
유용한 멍에가 되어 풍성한 삶의 열매를 스스로 경험해 가도록
유도해줄수 있다.
과거 선교회 시절...
컨셉을 깨닫지 못한 상황에서 OAT는 그져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나님 앞에 해놓고 연말에 가서는 자기비판 내지는 우울증에
시달리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OAT와 같은 TOOL이 나의
개인적인 신앙생활에 많은 보템이 되어주고 있어서 그져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