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회의 진수를 맛보게 해준 세미나
목회자 신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석정일 목사님의 특별한 배려로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하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사실 가정교회 목회를 하지도 못할 제게 굳이 이런 세미나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한 가지 이유로 참석하기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5박 6일이라는 부담스러운(?) 세미나에 기꺼이 참석을 강행했습니다. 가정교회에 대한 논문까지 썼지만 제 속에 한 가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가정교회가 수도권 서울에서도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정말 궁금했습니다. 현대인들 모두가 무한경쟁 속에서 힘들고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사회문화적으로 수도권은 다른 지역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고 각박하고 여유가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서울은 맹수들이 모여 사는 정글의 중심부와도 같은 곳입니다. 자신의 개인 신앙을 지키기에도 어려운 곳입니다. 이런 여건 속에서 물질과 시간, 정신적으로 상당한 헌신과 희생이 요구되는 가정교회가 현실적으로 과연 가능할까?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세미나를 통해 가정교회는 수도권 서울에서도 가능할 뿐 아니라, 오히려 훨씬 더 깊은 차원의 성경적 가정교회가 가능하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가정교회 핵심가치와 전략(네 기둥과 세 축)은 너무도 단순해서 겉에 드러난 설명만으로는 그 속에 “특별함”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신학적으로 허술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목자들의 간증에 쉽게 은혜를 받으면서도 그 간증을 가능케 하는 더 깊은 부분은 정작 놓치는 것 같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방법론이나 비법을 전수받고 싶어하니까요. 저는 이번에 그 숨겨진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5박 6일을 보냈습니다. 목자, 목녀들의 간증 속에서, 두 분 목사님의 강의 속에서도 그 이면에 감추어 있는 것을 보고 들으려고 애썼습니다. 저에게 가장 큰 도전과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싱글 목장 목자의 고백이었습니다. 영화감독을 지망하는 30대 초반의 그 자매는 “목장사역은 나의 생명줄이며, 내 삶의 우선순위를 붙잡아 주는 것”이라고 하면서 “내가 살기 위해 목자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53:5 말씀 묵상을 자신에게 적용하면서 목원들에게 변화가 없는 것은 “그들 때문에 내가 상함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요, 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주님, 상함 받는 것은 무서우니 내 곁에 계셔달라”고 울먹이면서 기도한 내용을 고백했습니다. 끝으로 “목자의 삶의 특권은 십자가의 사랑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를 삶으로 살아낼 수 있다는 것”고 하면서 목자의 삶은 길잃은 목원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아름다운 삶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소름이 끼쳤습니다. 가정교회 신학과 교회론이 그 속에 모두 담겨있었습니다. 어느 신학교 강단이나, 설교단에서 들을 수 없는 고백이었습니다. 가정교회 목장은 그런 고백을 가능케 하는 곳이었습니다. 목자, 목녀의 삶을 그런 성화로 이끄는 곳이었습니다. 그 고백이 정글같은 수도권 서울에서 치열하게, 힘들게 살아가는 30대 초반의 청년의 입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전통교회의 청년부 모임에서는 불가능한 고백이었습니다.
다음 날 오전 시간에 알바이트 때문에 밤샘을 하고 간증에 나온 대학생 형제(목원)가 놀라운 고백을 했습니다. 자신이 교회에서 자랐고 신앙생활을 했지만 하나님에 대해 무지했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상도 많이 받았지만 자신이 소중한 존재인지를 몰라 교회를 떠나려 했었는데, 목장에 초대받아 그 모임에서 섬김을 받으면서 처음으로 자신이 소중한 존재인지를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후 자신의 약점을 노출할 수 있었고 자기가 받은 섬김이 다른 사람을 섬기는 고리로 이어져, 주위에 모두가 꺼리는 자폐 친구를 목장으로 인도할 수 있었고, 그 친구가 변화되는 모습을 통해 큰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고 하면서 “목장이 없었다면 누가 이런 친구를 받아주었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러면서 가정교회 목장은 우리 교회와 사회의 “인싸(insider: 주류)들”이 아닌, “앗싸(outsider: 비주류)들”이 환영받고 소속감을 주는 곳이라고 표현하더군요. 그 속에도 십자가의 신학과 영성이 고백되고 있었습니다. 목장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공부와 일 때문에 밤잠을 종종 설쳐야 하는 그 바쁜 일정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속에서도 목장 모임은 자기 삶의 우선순위가 되었다고 하면서 모임시간이 길수록 행복감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다시 한번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가정교회를 통해 시대정신과 가치를 뒤집어엎는 복음의 능력, 십자가의 향기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병든 사회에서 피곤하게 살아가는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어떤 전통교회가 이런 행복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며 가슴이 저렸습니다. 이후 여러 목자 목녀들의 간증과 목장모임 그리고 초원모임에서의 진솔한 나눔 속에서도 동일하게 역사하는 성령의 임재와 십자가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게 민박을 제공한 가정의 목자는 시무 장로로서 대학총장직을 수행하는 분이었는데, 그 분주한 상황에서도 삶의 우선순위는 목장이었습니다. 세미나 기간에 둘째 아들의 군입대와 셋째의 대입원서를 지원하는 중요한 일이 있었음에도 그 일은 후순위였습니다. 목자의 진솔한 삶의 고백 한 마디 한 마디가 어떤 설교보다도 제 가슴을 울렸습니다. 목자, 목녀 그리고 목원들 모두가 21세기 사도행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나가는 믿음의 영웅들이었습니다.
가정교회 이론 강의는 이번이 저에게는 세 번째였습니다. 지난 3월 평신도 세미나에서, 7월 최영기 목사님의 일일 세미나에서 저자 직강을 이미 들은 바였습니다. 하지만 이경준 목사님(원로목사)의 강의는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그 속에 삶과 사역이 녹아 있었고 신앙과 영성이 배여 있었습니다. 석정일 목사님의 삶 공부 강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방법론 전수가 아니었습니다. 진솔한 고백 속에 인격과 삶과 사역이 하나였습니다. 가정교회가 방법론이 아니라 삶이라는 점을 두 목사님이 인격으로 투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두 분 목사님은 21세기 쇠락해가는 한국교회 회복을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종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 다운교회를 사용하고 계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감사한 것은 세미나 마지막 결단의 시간에 참석한 목회자 부부들의 고백에 나타난 모습이었습니다. 목사와 사모 이전에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로서 이전에 잘못된 자리에 서 있었던 것을 서로 고백하며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기로 다짐하는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가정교회의 정신이 제대로 전수된 성공적인 세미나였음을 확인하는 방점이었습니다. 아름다운 교회에서 아름다운 사람들을 통해 아름다운 시간을 갖게 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다운교회 모든 섬김이들에게 감사와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