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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 사랑방

뒤 돌아 섰더니..

강환구 11 1629

뒤 돌아 섰더니..

 

6시 조금 넘어 아들이 살며시 내 방으로 들어오더니

이불 속을 비집고 몸을 누인다.

「굿모닝 파파~~」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신호이다.

 

오늘은 간단히 떡국으로 아침을 먹고

분주하게 출근준비하는 아들을 뒤로하며 사우나탕으로 향한다.

 

40년전 조성된 재래시장 끝자락 얼마전 불탄 흔적이 있는 오래된 건물이 있고

그 건물에 대중목욕탕이란 간판이 달려있는 곳을 지나친다.

워낙 낡고 허름한 건물에 있는터라 오가는 사이 자주 봤지만

지금껏 단 한번도 이용하지 않은 곳이다.

이 곳을 지나면 신기루 같은 고층 아파트와 새로 조성된 빌딩숲이 나온다.

50미터만 더 가면 된다.

 

그런데 오늘따라 그 건물 3층에 있는 사우나 간판이 유난히 눈에 띤다.

날씨가 쌀쌀해서일까 몇걸음 지나치던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뒤돌아 서서 그 건물 계단을 오른다.

 

그런데 그 결정이 되돌릴 수 없는 후회를 가져오고야 말았다.

 

우선 카운터 계산을 마치고 들어가니

전혀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한쪽은 여탕 또 한쪽은 남탕으로 문이 두개다.

남탕문을 열고 들어선다.

옷장 열쇠를 찾으려 한참을 두리번 거리다 결국 못찾고

한 쪽 구석에 있는 이발소로 가서 여쭌다.

신발장에 신을 넣고 그 문에 꽂혀 있는 열쇠로 열면된다고 말한다.

옷을 벗는데 참 춥다.

실내 온도가 얼마면 이렇게 추울까하고 주변을 살피니

둥그런 전기 스토브 한대가 윗쪽 한칸만 꺼질듯이 불을 밝히고 있다.

탕안으로 들어서니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나이든 사람들이 서너명 앉아 있다.

이 곳이 문을 연 후로 지금껏 변함없이 이용한 사람들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고서는 누구도 이 곳을 찾으리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실내 분위기가 그것을 증명한다.

실내등은 꼭 켜있어야 될 서너 곳만 희미한 가로등처럼 밝히고 있다.

샤워기 옆 비눗갑 위에는 닳고 닳은 얇은 비누가 덩그렇게 놓여있다.

얼마나 단단한지 거품도 나지 않는다.

사워기도 몇군데가 고장나 뜯겨져 있다.

 

엉거추춤 서있는 나를 더욱 당황하게 만든 것은

디디고 서있는 돌바닥 군데군데가 종유석처럼 하얗게 변해버린 것을 본 것이다.

다리에 쥐가 날것 같다.

샤워를 하는둥 마는둥 마치고 말없이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로 자리를 옮긴다.

 

앉아서 씻는 곳에 있는 샤워기를 들어본다.

손잡이만 멀쩡하고 온통 새까맣다.

기름때인지 곰팡인지 구별이 안된다.

흘러나오는 물만 새것이고 모두가 낡아 있다.

 

씻기를 포기하고 온탕물이 있는 곳으로 눈길을 보낸다.

온수 냉수를 공급하는 커다란 수도꼭지가 검붉은 모습으로 누워있다.

천정에는 칠이 벗겨지고 여기저기 석순이 고드름처럼 길게 달려있다.

한쪽 벽면을 차지한 탕 속의 새파란 조각타일이

물과 어우러져 더욱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치 유령의 집에 들어 온 것 같다.

 

아~~.

이게 무슨 일인가.

왜 내가 이 아침 발길을 돌려 여기로 왔단 말인가..

아무리 발버둥처도 어쩔 수 없이 불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것 처럼..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몸을 씻으러 왔다가 온 몸에 소름만 가득 돋아났다.

비누칠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도망치듯 그 곳을 빠져나온다.

 

아들이 출근하고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왔다.

세면장에 들어가 면도하고 머리감고 몸에 물을 끼엊는다.

. . .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황당한 일을 겪고 난 후

와이셔츠 다림질하며..

교회갈 준비를 한다.

 

집을 나서서 다시 그 목욕탕을 지나친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다.

그 곳 앞에서 발걸음이 또 멈춰진다.

 

50여년 동안 닦이지 않은 더러운 찌꺼기가 내 안에도 있는 것 같다.

겉만 깨끗할 뿐..

속에는 아직도 더러운 피가 흐른다.

혈관도 종유석처럼 그렇게 오랜 세월 하얗게 막히고 굳어져 있는게 틀림없다.

 

바로 조금 전에 목욕탕에서 보고 느낀 모든 더러운 것들이

그동안 나를 병들게 하고

그로인해 힘들어 했던 것과 별반 다를것이 없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잃었던 몸과 영혼을

다시 한 번 주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어 달라고 기도해야겠다.

그냥 지나치려 했던..

내 안에 있는 더러운 것을..

잠시나마 멈춰 서서 보게하신 주님을 송축하며..

교회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2010. 3. 21

강환구 Sam, Kang

11 Comments
배재현 2010.03.24 21:38  
어머님이 사시는 보광동에 가면 아지고 "한성목욕탕"이라는간판을 붙이고 영업하는곳에 가끔갑니다 제가어릴때 아버님과 같이 많이같을때는 신식시설이라 사람이 넘쳐난는데 지금은 목욕탕에가면  저혼자 독탕으로 목욕을 하고 나옵니다
시설은 30년전에 새로지었지만 내부시설은 어떻게 그리도 또같은지요
그래도 거기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와 같이왔던기억이 떠오르곤하였답니다
세월의 흐름에 세상이너무빨리바뀌어서 예것들이 없는데 아직도 이러한곳이
 남아있네요 그속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는 집사님이 참으로 부럽습니다
서미란 2010.03.24 06:07  
생활속에서 발견하는 주옥같은 묵상이 더욱 은혜롭고 도전이 됩니다^^*
강환구 2010.03.23 04:05  
맞아요..
그 목욕탕이 문을 열 당시만해도 최신 시설이었다고 자랑했을 테니까요.
누가 목욕탕 갔나요.. 웬만하면 집에서 등목했을 시절이었지요.ㅎㅎㅎ
수리를 하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더라구요.
사우나탕 시설전문업체를 운영했던 전적이 있던터라..
모든 소품들이 단종되어 생산되지 않으니..
한 두개 갈아 놓으면 그 몰골이 더욱 우스울거고 차라리 그대로 두는게 나을듯..
시장 사람만이 그 목욕탕이 앉고 있는 모든 상처를 감싸주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 사람들 모두 사라지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겠지요.
아무도 찾아주지 않을거니까요..
뒤돌아서면 아직도 질펀한 것이 널려있는게 세상인걸 어찌하겠습니까?
이시영 2010.03.23 03:21  
50미터 거리를 두고 문명의 차이가 그렇게 나다니....
참 아이러니한 세상입니다^^
그 대중탕을 그림을 그려도 될정도로 잘 써주셔서
문득 그옛날 읽었던 소설책이 생각날정도입니다.
일상속에서나 작은일에서도 깨달음을 주시는 하나님이나
그깨달음을 느끼시고
생각하시는 집사님도 참 좋아요^^
김동수 2010.03.23 00:24  
저도 주일날 얼굴 뵙고 반갑고도 깜짝 놀랐습니다.  참 건강하고 밝은 모습에 감명 받았습니다.  영혼이 맑고 건강하시니 얼굴에 나타나는것 같습니다.
김경민 2010.03.22 22:38  
으  흐흐흐흐흐 재밌어요
최혜영 2010.03.22 21:27  
늘 생각할 것을  던져 주시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주일날 인사하게 되어 기뻤읍니다.^^
김영미 2010.03.22 19:33  
김병수집사님 말씀이 동감이가네요. 나의 작은실수를 통해서도 주님은 배우게하시니 말이예요. 그러나 집사님, 집사님은 겉만 깨끗하시지 않으시고요. 속도 이미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해져서 예쁘게 사시고 계시잖아요. 사랑해요. 집사님!!! 
김병수 2010.03.22 09:19  
50여년 동안 닦이지 않은 더러운 찌꺼기~
깊은 묵상을 하게하는 귀한 메세지란 생각입니다.
한치의 오차도 없으신 아버지는 우리들의 실수를 통해서도 배우게 하시는군요.
우리의 생각,우리의 습관,상식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진 아집과 편견,잘못된 식습관으로 혼탁해진 피와                                    성전인 육체에 허락도 없이 기생하고 있는 불법 부착물(지방 덩어리)등등..
주님의 자녀로서의 건강하고 순결한 영혼육을 가지겠다는 회개와 결단을 하게되는
멋진 밤입니다.
감사합니다.강집사님!
김현중 2010.03.22 08:36  
집사님, 안녕하세요? 오늘 식당에서 먼저 다가오셔서 이름 불러주시고 인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와  저희 목장의 박영배집사님 이름을 어떻게 아실까 궁금했습니다. 저도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까지 큰아이 아들과 대중사우나탕을 자주 가곤 했는데요, 최근 2년간은 집에서만 샤워를 했습니다. 조만간에 마음의 때를 벗기기 위해 아들과 대중탕을 꼭 가보겠습니다. 강집사님 글을 기억하면서요.
홍연호 2010.03.22 07:27  
강집사님!!
문득 그 옛날 그 향수????
발걸움을 멈추고 들어가게된 오래된 사우나탕 이야기를 들으면서
혼자 히쭉히쭉 웃으면서 하나님께서 집사님을 통해서 계획하시는
일들을 기대하게 됩니다.
오늘 교회에서 뵙면서 좋아진 얼굴에 더 멋있는 웃음으로 잘 지냈느냐며
인사를 건내는 모습에서 힘이 느껴졌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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