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네팔 언제 가세요?' 물어 보시는 분이 계셔서 막 업데이트한 소식지로 대신 답을.. 휘~뤼릭
좋은 일 있을끼다!!! 58 번째 기도편지
아버님, 양 상현 장로님께서 2010년 3월 15일, 91세로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일제시대와 6.25 등 격동의 시기를 도전 가운데 사셨으며, 이북에서 부산까지 피난 오시어 증손녀를 포함하여 슬하에 20 자손을 두셨습니다. 40대 초반에 예수를 믿으신 후에 초고속으로 장로님이 되셨으며, 교회와 교단을 많이 섬기셨습니다. 돌아가시기까지 세무사 사무실을 운영하셨으니 ‘순직’에 해당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뵙지 못하여 아쉽지만 천국에서 다시 뵈올 것을 기대합니다.
84세이신 어머니는 대퇴부 골절로 최근 수술 받으시고, 아버님을 먼저 보내시느라 많이 약해지신 것 같습니다. 형님 가족이 모시고 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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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노회장으로 치러진 발인예배
아버님 빈소에서 ‘아이고, 네팔에서 어찌 그리 빨리 나왔노?’ 인사하시는 분도 계셨고, ‘그래도 나와 있을 때 아버님 돌아 가셔서 참 감사하다’ 인사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 아니었습니다
저희가 지난 일 년 간 기도 편지나 소식을 전하지 못한 것은 저희 가정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009년 6월 16일 안식월로 두 달을 예정하고 한국을 나왔다가 지난 12월 큰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작년 여름 8월 10일 네팔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예약하였지만, ‘간다’ ‘간다’ 한 것이 모두 4번의 예약 취소를 반복하다가 ‘한국에서 2년간의 긴 안식년을 가짐으로 회복과 재충전이 필요한 시기를 가지자’ 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너희들 탈진하였으니 당분간 네팔을 떠나 있되 한국에 가서 길게 안식년을 가지라’는 현지 네팔 선교부 대표의 수차례에 걸친 눈물어린 권고대로 된 셈입니다.
현재는 고신 총회 선교부와 인터서브에서 2년의 [연장 안식년]을 허락 받고 한국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나갈 수도 뒤로 물러날 수도...
(혹은 한국으로 돌아올 수도 네팔에 있을 수도 없었던 상황들)
티미 병원 참여의 실패, 네팔 의료보험 진행의 어려움, 인간관계의 어려움, 자녀에게 생기는 문제를 포함하여, 어려운 일이 생기려니 설상가상으로 문제 위에 문제가 지난 일 년 반간 계속적으로 발생하였고, 점점 외부적인 문제에 눌려 저희 부부는 드러눕게까지 되었습니다. 참고 참다가 지난 6월 한국에 나오게 되었으나, 곧 7월에, 신경희가 입원을 하자 아래와 같은 인사를 많이도 들었습니다.
‘천하 장수 신경희가 넘어지다니’ ‘난공불락 신경희가 쓰러지다니’ ‘이제 그만 해도 된다. 한국에 들어올 때도 되었지’ ‘근력이 다 빠질 때도 되었다’ 등 등 ..
지난 17년간 젊고 힘 있을 때는 어려움을 씩씩하게 잘 극복하였다고 생각되었는데, 조금씩 웃음과 기쁨을 잃기 시작하면서 내적 외적 에너지가 한꺼번에 무너졌던 신경희가 작년 한국에 온지 몇 주 안 되어 우울증으로 병원 신세와 상담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양승봉도 함께 우울증 증상으로 같이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주님 뜻이 아니면 멈춰 서리라’
병이 났어도 안식 월이 끝나 네팔 돌아갈 날짜가 되자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중 대전 카이스트에 교수로 근무하는 후배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왜 다른 선교사들같이 지긋하게 한국에서 안식년을 하지 않고,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는데 네팔로 돌아가려느냐?”
또 일단 내려 와서 인모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라고 하는 그 전화를 받고 대전으로 내려갔습니다. 후배 부인이 말하기를; “그 동안 네팔에서 수고 많이 하셨는데.. 두 분 가정을 어떻게 도와 드릴까 생각했는데 인모를 저희 집에 데리고 있으면서 돌봐 드릴 터이니 두 분은 서울에서 푹 쉬시고 재충전 하세요”
저희 부부의 건강이 너무 나빠져 인모를 돌볼 여력이 없었던 위기의 상황에 갑자기 나타난 그 후배의 도움으로 인모는 2009년 가을 학기를 대전국제 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인모는 졸지에 부모와 떨어져 그 가정의 돌봄을 받게 되었습니다.
인모를 돌보는 일과 학교 문제로부터 해방된 우리 부부는 비로소 두 사람만의 시간을 가지며 모새골, 필그림하우스 등 기도원도 여러 번 다니며 또 전문가로부터 상담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공격해온 우울증과 개인과 가족과 사역에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깊이 나누며 상담하며 치유 받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네팔 의료보험을 시작해놓고 안 오면 어떡하냐!’ 고 네팔에서 연락이 계속 오므로 네팔을 가냐 마느냐의 갈등을 계속 하던 중 하나님이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다.’ (경상도 말로는 ‘좋은 일 있을끼~다’)
12월 첫 주 토요일 아침에 찾아온 마음의 평강
안식 월이 끝났으니 네팔로 돌아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지만 다시 돌아갈 용기도 나지 않던 중 저희 부부는 많은 분들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선교사도 하셨고 현재 한국에서 개원을 하고 계신 어느 장로님이 ‘가도 되고 안 가도 되고..’ 해주신 조언은 저희가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고 있으니 네팔로 가든 안 가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자유함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지금은 중간 점검 기-혹, 다음에 있을 긴 뜀박질을 위해
저희가 네팔에 나가 있는 동안 급속이 변해버린 한국 사회에 돌아와 약 2년 정도 깊숙이 다시 이 사회에 들어와 새로운 의료 기술도 익히고 변해가는 한국 사회도 익힌 뒤 다음에 있을 의미 있는 인생 후반기를 준비할 기간과 재연수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어려웠던 상황들에 밀려 드디어 한국에서 2년을 지내게 되니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양승봉은
지난 17년간의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너무 많이 변해 버린 한국 사회를 이해하고, 가능한 많이 적응해 보려고 합니다.
외과 의사로서 한국 의료 사회에서 생존 할 수 있는 실력을 키우려 합니다.
병원 연수(복강경, 대장 내시경, 대장 항문외과, 혈관외과 등)와 다양한 외과 학회 참석을 해 왔으며, 계속 하려고 합니다.
5월부터는 친구들이 20여 년 전에 시작한 병원(신천연합병원)에서 2년 간 근무를 하려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설립되고 존속 되어온 병원이라 제가 선교사의 정체성을 잘 지키며 일 할 수 있는 병원으로 생각 됩니다.
2년 동안 발전시킨 외과 기술은 네팔로 돌아갈 때 발전된 기술을 가지고 가서 네팔의사들에게 전수가 가능하고, 혹시 한국에 있게 되더라도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다시 선교지로 나가더라도 좋은 모습이 될 것이고, 한국에 정착을 하더라도 우리 가정에도 좋고, 선교사로 뛰고 있는 후배들에게도 하나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신경희는
잘 쉬면서 한국을 즐김으로 몸과 마음을 서서히 회복하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2010년 2학기부터 이대 대학원에서 특수교육 석사과정을 할 예정입니다.
1. 한국 특수 교육의 학문적인 발전을 배우고, 현장 경험을 통하여 한국에서 유용한 특수 교사로서 준비가 될 것이고,
2. 진일보 된 지식과 경험은 네팔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학에서 강의도 할 수 있고, 특수학교 설립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양인모는
전혀 계획이나 기대 없이 한국에 머물게 되어 어려운 시기를 보내었으나, 기회에 한국말로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한 학년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네팔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길게 살아본 경험이 없고, 한국 학교 경험이 거의 없기도 하고, 부모의 노력이 부족하여 한국 교과 과정을 따라 가는 것을 네팔에서는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한 학년을 낮추기는 하였지만 올 한 해 한국 학교에서의 경험이 인모가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앞으로 살아가는데 매우 유익한 기간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진모, 경모
지난 6년간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지내며, 부모나 자녀들이나 서로 그리워하며 지냈는데, 그래도 조금 물리적으로 가까이 지내게 다행으로 생각됩니다. 서로가 더 이해하고 아껴주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진모는 뉴질랜드에서 약사 인턴 과정을 밟아야 하며, 경모는 한동대학에서 4학년 졸업반으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세미나(2009년 5월)
네팔 건강(의료)보험
네팔의료보험 연구소 (소장: 양승봉)가 2008년에 코이카에 제안한 네팔 건강보험 안이 2009년 12월이 되어서야 KOICA의 사업으로 채택이 되었습니다. 사전타당성 조사단이 구성이 되어 2010년 2월에 네팔에 들어갔습니다. 양승봉도 전문가의 한 사람으로 참여를 하였습니다. 저희가 제안한 규모보다 질적 양적으로 커고 좋게 계획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3년간 타당성 조사 기간(2010~2012) 동안 네팔 인력 양성(훈련, 연수 등), 제도 구축, 컴퓨터 프로그램 등 건강보험 시작을 위한 준비 작업을 하게 될 것입니다. 5월 초에는 한국-네팔 정부 간 협약이 맺어질 예정입니다. 네팔 사람들을 향한 동정심으로 시작한 일이 중간 결실을 맺게 된 것 같습니다.
저희 가정이 네팔에 들어 갈 때가 되면 본 사업을 시작하게 되므로 그 때 필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가 됩니다.
(따로 보고서를 낼 예정임)
7 주간의 네팔 방문
2010년 1월 초부터 2월 말까지 네팔을 다녀왔습니다. 밀렸던 일들을 정리하기도 하고 많은 방문객들을 맞기도 하였습니다. 7주 동안 모두 6팀이 다녀갔습니다. 구정을 전후로는 서울 새문안 교회 진료 팀이 와서 티벳 국경에서 1,800명을 진료하기도 하였습니다. 3주간 숙식을 같이 한 부산대 영상팀은 제 삶의 일부를 기록으로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기진한 선교사에도 아직 기여할 부분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네팔의 집과 살림은 그대로 남겨두고, 다른 가정이 2년 간 사용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서울에 있을 곳이 마련되었습니다
다운 교회, 이랜드 복지 재단과 아시안 미션의 대표이신 이경준 목사님의 비젼을 따라 준비된 로뎀 선교관에 저희가 머물게 되었으며, 여러 까마귀들의 따뜻한 돌봄과 관심 아래 재충전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91-9 202호 전화: 070 7013 0029)
아직 저희 기력이 충분하지 못하고, 쉬어야 하는 형편이라 지금까지 대외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소극적으로 생활하게 될 저희들을 이해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선교비 후원에 관하여
연장 안식년으로 국내에서 2년여 생활을 하게 되었으나, 저희가 다시 선교사로 나갈 것을 기대하고 있으므로 후원을 계속 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 후원자들과 선교부(총회선교부와 인터서브)의 의견도 중단하지 말고, 계속 후원을 받을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한번 세워진 후원 체계를 중단했다가 다시 회복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후원해 주시는 교회와 후원자들께서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같이 기도해 주십시오
1. 아버님께서 건강하게 지내시다 천국 가심을 감사드립니다.
2. 어머니께서 건강을 잘 회복 하시도록
3. 저희 가정에 재충전의 기회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양승봉: 병원 연수와 근무 기회
-신경희: 재교육의 기회
-양인모: 한국 학교에서의 공부
4. 진모, 경모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으로 훈련받고 준비되도록
5. 저희 부부가 잘 쉬고 문화생활도 즐기고 자녀들과의 관계에도 연합과 회복이 있도록
6. 네팔 건강보험 사업이 계속 잘 진행 되도록
2010년 3월 27일
양승봉 - 신경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