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묵상(약속과 성취의 봉우리를 보는 믿음)
약속과 성취의 봉우리를 보는 믿음./ 욥기 29:1-14<?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교회 모임에 참여하지 않으면 차츰 마음이 떠난다는 말대로 대학 3년 차인 제 딸도 그 동안 서울에 혼자 있어서인지 교회에 꼭 가야 된다는 마음이 엷어져서 당분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서울에서 함께 예배를 드려야지 하는 차에 마침 회사 팀 단합모임이 주말에 있어서 이 번 주는 울산으로 내려가지 않고 주일을 딸과 함께 서울 다운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인생의 계곡을 건너갈 때 소망이 다른 무엇도 아닌 오직 교회에 있다는 것을 딸에게 보여 주겠다는 마음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지만 쉽게 마음을 돌리지 못하고 있는 딸의 눈치만 살펴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실 때와 성취하실 때와의 간격을 메워주는 인내와 소망을 배웠으면 하는 바램은 비단 딸의 문제만도 아닌 제게도 여전히 숙제로 다가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모래처럼 많은 자손들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말년에 가서야 겨우 얻은 이삭이라는 아들입니다. 본문 말씀에서도 욥은 과거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조목조목 기억하며 고난의 계곡을 건너는 욥의 이야기도 마지막 장인 42장에 가서야 회복됩니다.
더군다나 신약에 와서는 제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당대에 이루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초대교회 때의 제자들이 가장 좋아했던 인사가 ‘마라나타’, 즉 예수님의 재림을 의미하는 말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신 약속도 초대교회 때와 같은 그리스도의 새로운 처소인 ‘에클라시아’ 즉 교회입니다.
“교회가 유일한 소망입니다.” 란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가 그 동안 교회의 외형을 키우고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는데 몰두하다가 정작 유일한 소망인 그리스도를 우리 교회가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꽤 열심 있는 집사나 함께하는 신우회 가족이 더 이상 교회가 유일한 소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인터넷 예배와 초 교파적인 활동 등 다른 것에서도 길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과 반문을 제게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교회이고 한 몸입니다. 따로 떨어져서는 건강할 수 없고 함께 모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나갈 때 그리스도가 그 가운데 나타나십니다.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서로의 형편을 살피고 도와주고 삶을 나누며 고백한 죄를 서로가 아파하며 모두가 기도해주는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은사를 주시며 교회를 이끌어 가는 것을 경험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우리 교회 모임에 와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고백하는 맛을 경험해야 약속과 성취의 봉우리 사이의 긴 계곡을 건널 수 있습니다..
서울과 울산을 오가는 6년 차 주말부부의 삶에서 나름대로 건강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은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소그룹 모임인 신우회에 내가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해외에서 근무할 때에도 삶을 나누고 함께 예배 드리는 소그룹 모임부터 먼저 만든 까닭 또한 그리스도가 그 안에 나타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교회가 우리의 삶의 방식으로 자리잡는 소망이 깊어지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