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10. 늘 하듯이 기도하며 감사를 드렸다. "다니엘 6:1~10"
다니엘은 참 대단한 인물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시대부터, 벨사살 왕을 거쳐 다리오 왕의 시대까지, 바벨론이 무너지고 페르시아 왕국이 세워지기까지 권력의 중심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갑니다. 왕들이 제국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다니엘이 다스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 만큼 다니엘에 대한 시기와 질투도 끊이지 않습니다. 황제 다음 가는 권력의 자리에 있었지만, 다니엘을 대적하는 무리들은 그를 “유다에서 잡혀 온 다니엘”이라고 무시합니다. 그들에게 다니엘은 여전히 하찮은 포로 출신의 이방인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들의 자존심을 짓밟는 외부인일 뿐입니다. 그래서 호시탐탐 그를 무너뜨릴 기회를 노립니다.
그러나 다니엘에게는 “틈”이 없었습니다. 다니엘은 신앙의 사람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실력과 성품을 갖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사람에게는 세상의 도전과 공격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비둘기처럼 순결하기만 한 신앙만으로는 안됩니다. 뱀처럼 지혜로운 성품과 실력도 갖추어야 합니다. 신앙을 게으름을 정당화하는 도피처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결국 다니엘의 신앙에서 “틈”을 찾아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다니엘은 하나님 편에 선 신앙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단지 인간 다니엘에게 도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도전한 어리석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내편이 되기를 구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하나님 편에 서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이 발견한 “틈”은 다니엘의 “틈”이 아니라 다리오 왕의 “틈”이었습니다. 책임자의 자리는 결코 쉬운 자리가 아닙니다. 영향력이 클수록 책임도 큽니다. 변화는 신중해야 합니다. 모든 변화에는 그 변화를 누리는 쪽과 희생을 치르는 쪽이 있습니다. 변화로 인해서 누가 희생을 치르는지, 어떻게 그 희생을 보상할 수 있겠는지, 그들이 그 희생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볼 수 있어야 평화로운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왕에게 불순종하기를 선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권위에 순종해야 하지만, 때로 불순종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권위자에 대한 순종이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 될 때입니다. 어쩔 수 없이 불순종을 선택할 때도 하나님의 방법으로 손해를 감수하고 예의를 갖추어서 불순종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그들의 의도를 알았으나, 분노의 기도가 아니라 감사의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첫째는 오랜 기도의 훈련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해 봅니다. 둘째는 이것이 자신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싸움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