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고 굳게 붙잡고 있어라
그리 크지 않은 두아디라 교회에도 주님께서 칭찬하실 일과 아울러 책망을 받아야할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근거하면 변함이 없는데, 다른 사람의 기준 이나 계속해서 변화하는 문화에 근거해서 생활을 하다보면 조금씩 변질이 되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사데 지방은 염직공업이 흥하였고 공업과 무역으로 부유한 도시가 되어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사데 교회는 사치와 부도덕의 도시가 되어 세속화의 길을 걷고 있었으며, 타성에 젖어 살면서 서서히 무기력해져서 힘을 쓰지 못하는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교회를 심하게 책망하심으로써 깨어날 것을 기대하셨습니다.
1. 영적인 죽음은 두려운 일이다.
두아디라 교회에게 사랑의 책망을 하시기 전에 먼저 “네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을 안다.”고 칭찬을 해주신 것은 우리에게 큰 격려가 되는 일입니다. 우리의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더 나아져야한다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요? 저는 갈수록 균형 잡힌 영성을 가지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사데 교회처럼 무기력해져서 힘을 쓰지 못하는 교회는 잠자는 교회, 또는 죽은 교회나 다름이 없습니다. 교회가 세속화되거나 종교적 형식주의에 빠져있거나 자기만족의 껍질 속에 안주해 있다면 깨어나야 합니다. 영적인 죽음은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통을 단절 시키는 두려운 일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2. 굳게 지키고 회개하여라.
주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주었어도 회개하지 않은 그 사람뿐만 아니라,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회개하지 않으면 큰 환난을 당하게 하겠다고 주님은 경고하셨습니다. 실수는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살아있는 교회가 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주님께 칭찬받는 교회가 되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실 교회의 첫 번째 모습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대로 서로 사랑하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면 됩니다. 둘째는, 주님께서 주신 지상사명대로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주님 께서 우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에 힘쓰는 삶을 살면 죄를 지을 여유도 없게 됩니다.
3. 굳게 붙잡고 있어라.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나 교리적인 순수성을 해치려 하고, 윤리적인 수준을 떨어 뜨리려는 세력들이 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는 사람은 요동하지 않습니다.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든든하게 서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지켜 행하는 사람은 사단의 꼬임이나 가르침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렵게 보여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위험의 순간이 변하여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위기(危機)라는 말은, 한자의 위(危)와 기(機)가 보여주는 것처럼, 위험한 순간이지만, 또한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데에도 그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승리의 거룩한 옷을 입히시고 함께 다닐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왕과 함께 왕궁을 거니는 신하들을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들도 그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